결혼준비·예절/뉴스

“매일 우주로 날아가는 꿈 꾼다”

웨딩21뉴스_ 2007. 4. 3. 11:35


▶고산, 이소연씨가 러시아어 수업을 받고 있다.

정말 시작이 반이었다.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가 되는 것부터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경쟁률 1만5000대 1이란 말만으론 부족하다. 최초 우주인이 되기 위해 모여든 쟁쟁한 경쟁자들 중 허수가 몇 명이나 있었을까. 체격 조건, 외국어 실력, 과학적 소양까지 지원 조건부터가 웬만한 사람이 노릴 일은 아니다. 그야말로 한국 과학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니 말이다. 지난해 12월 말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고산(30·남), 이소연(28·여)씨가 후보로 뽑혔다.

한국에서의 준비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3월 7일 두 사람은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로 떠났다. 선발 과정이 절반의 과정이었다면 이제 남은 절반은 프로 우주인이 되는 것. 러시아에서 둘은 8월까지는 러시아어 집중 훈련, 우주선 이론 교육 및 기초 과학기술 수업 등 기본훈련을 하게 된다. 9월부터 2008년 3월까지는 중력가속도 적응, 고도 적응 등 우주 적응 및 우주과학실험 수행을 위한 훈련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주선에 오르는 사람은 단 한 명. 둘 중 한 명은 숙명적으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 둘은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러시아어를 집중 교육받고 있다. 교육 시간 대부분이 러시아어 수업이며,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요일에 체력훈련이 2시간씩 배정돼 있다.

이제 막 한 달. 얼마나 설레고 얼마나 힘들까. 모든 일정이 끝난 늦은 저녁, 이코노미스트에 두 사람이 함께 보낸 e-메일 편지가 도착했다. 독자에게 이들의 도전이 작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열어 보았다.

고 3 뺨치는 일정에도 행복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로 러시아에서 훈련받고 있는 고산, 이소연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무엇보다 너무 행복합니다. 온종일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으니까요. 마치 유년기로 돌아간 듯한 느낌입니다. 그 시절에는 모든 순간순간이 새롭고 즐겁기만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가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하루 4시간씩의 러시아어 수업을 따라가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책을 봅니다. 딱히 훈련 과정이 고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시간들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집에 안부전화도 자주 하니까 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이곳에서도 새로운 친구를 많이 알아가는 중이어서 재미있습니다.

이곳은 정말 최고의 우주인 양성소입니다. 예전 의학검진으로 왔을 때도 느꼈고 러시아어 수업을 받으면서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외국 우주인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친 경력만 20년 이상 된 분입니다.

이곳에선 외국 우주인 훈련은 물론이고, 모든 우주인 훈련이 전문 교육자가 소수를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런 교육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도 가끔 러시아어가 어려워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 과학실험을 수행하는 한국 최초 우주인이 되고 싶었던 그 마음 그대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힘들 땐 한국에서 하던 대로 묵상을 하기도 합니다. 러시아에 오기 전, 마지막 10명의 후보 중 한 명인 최아정씨가 힘들 때 꼭 안으면 편안해질 거라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작은 원숭이 인형을 건네줬었는데 그게 제 침대 머리맡에서 웃고 있어 힘이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소림이’라는 인형도 제치고 데려온 원숭이 인형이네요.(이소연)

1950년대에 소련이 조성한 1급 비밀 기지였던 이곳 ‘Zvezdny Gorodok’ (스타 시티)이 냉전시대에는 동서 간의 경쟁적 우주 개발의 전초기지였지만 이제는 전 세계 우주인들의 협력의 장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우리 한국 우주인 후보 말고도 러시아, 유럽, 미국 우주인 등이 함께 교육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유럽의 우주인들뿐 아니라 미국의 우주인들까지 자국의 ‘스페이스 셔틀’ 말고도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우리 대한민국이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아마 여러분께서 이곳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신다면,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배출 사업이 ‘10일간의 우주 비행’으로 평가되기보다는 우리 대한민국이 유인 우주 개발의 역사에 처음으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최초로 10일간 우주에서 과학실험을 수행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기 위한 도약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주과학 분야는 한 나라 또는 하나의 기관이 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많아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한데 저희의 도전은 한국도 선진국과 같은 경험 및 기술을 가진 나라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될 것입니다.

우주에 머무는 10일은 물론이고 그 전 1년 동안의 훈련 과정에서 러시아,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 우주인들과 함께함으로써 우주과학 분야 선진국과의 협력 통로를 마련하는 기회도 된다고 생각됩니다. 꼭 해보고 싶은 실험을 고르라면 식물 생장 및 발아 실험입니다. 가끔 SF영화에서도 등장하듯이 인류가 우주에서 거주하는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하는데,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선행돼야 할 연구 중 하나지요.

유리 가가린에게 꽃을 바치며…

이곳에 온 다음날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을 한 유리 가가린의 생일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주인들은 우주 비행을 하기 전에 유리 가가린의 동상 앞에 꽃을 바칩니다. 한국의 우주인은 내년 4월 우주로 올라가게 되지만, 저는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개인적으로 유리 가가린의 발밑에 꽃을 바쳤습니다(고산). 우주선을 타고 날아오르는 비행을 준비하기 위한 1년이라는 기간 자체가 저희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비행’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1년 동안 후회 없이 힘찬 날갯짓을 해 보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할 수만 있다면 1년 후에 최후의 한 명이 되어 우주선에 타고 있건 아니건 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멋진 비행이었다’ 고 말하며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러시아에 힘들게 머물다 보니 한국의 소중함을 느끼고, 대한민국이 더욱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라에 살고 계신 국민 여러분 또한 사랑합니다. 그 사랑에, 최선을 다해 훈련받고, 우주인 최종 후보로서 맡은 임무를 다하는 것으로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