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짝을 지으면 평생 절개를 지키는 새로 알려져 부부 금슬을 상장하는 원앙. 2 혼례식에 사용되는 주안상. |
혼례와 혼인 젊은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고 치르게 되는 의식인 혼례는 일종의 혼인의 예로 볼 수 있는데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후세에 존속시켜 대를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혼례의 어원을 살펴보면 ‘혼(婚)’을 ‘혼(昏)’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처럼 두 가지로 나누는 이유는 혼례가 ‘해가 저무는 시간에 올리는 예’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의 만남은 음과 양의 만남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낮과 밤이 교차하는 해가 저무는 때가 두 사람이 일치되는 시점으로 합당하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해석되었다. 또한 전통혼례의 기원은 중국의 주나라 시대부터 시행된 것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전통 혼례의 근본을 이루었는데 그중 육례는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의 혼인 절차를 일컫는 말이며, 육례를 갖춘다는 것은 정식 결혼을 거행한다는 뜻이다. 장가든다는 의미의 ‘혼(婚)’과 시집간다는 뜻의 ‘인(姻)’이 결합된 단어인 혼인은 음과 양이 합하여 짝을 이룬다는 자연의 기본 섭리를 따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마땅히 합하는 것이 혼인이다’라는 뜻을 기본으로 혼인의 의미를 더욱 깊게 담아내는 전통혼례에 대해 짚어본다. 주육례(周六禮) 주육례란 육례 속에 포함되어 있는 여섯 가지 절차를 말하며, 주례란 기원전 1100년경부터 256년까지 중국 주나라의 정치 제도와 관제 및 풍속을 담아놓은 책이다. ‘납채’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을 아내 삼기로 정했다는 뜻을 전하는 것으로 신랑이 사주를 적어 신부 집에 혼서지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신랑 측에서 신부가 될 규수의 어머니의 성씨를 묻는 ‘문명’은 딸이 어머니의 가르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신부의 어머니가 누구인가를 알면 신부 될 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믿었다. ‘납길’은 신랑 측에서 신부 측의 문명에 대한 회답 내용과 혼인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다.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정했다는 징표로 현재의 함을 보내듯이 물건을 보내는 ‘납징’,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혼인 날짜를 정해달라고 청하는 ‘청기’는 여성의 생리일을 고려하여 날짜를 정하는 것이다. 친영 친영은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신부를 맞아오는 예로서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 순서로 식을 진행하며 오늘날의 결혼식과 같다. 혼인식의 첫 번째 순서인 ‘전안례’는 신랑이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으로 기러기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덕목을 본받자는 뜻을 갖고 있다. 기러기는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 하여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의미한다. 또한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어 날아가는 상하의 질서 유지와 지나간 자리에 흔적을 남기는 습성 때문에 삶의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기러기를 놓고 예를 올리는 것이다.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초례청에서 처음으로 상대와 상견하게 되는 ‘교배례’를 갖는다. 상견이 끝나면 상대방에게 절을 하며 이 교배례로서 두 사람은 백년해로의 서약을 맺는 것이다. 신랑은 초례청의 동쪽 자리로 들어서게 되고, 신부는 시중을 드는 수모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면서 바닥에 깔아놓은 백포를 밟고 초례청 서쪽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때 신랑은 신부를 초례청으로 안내하고 신부의 수모가 신랑 쪽의 자리를 펴고 신랑의 시반이 신부 쪽으로 자리를 펴게 된다. 신랑은 동쪽, 신부는 서쪽에서 혼례상을 중앙에 두고 마주 서게 된다. 이때 신랑은 남쪽에 준비된 대야에서 손을 씻고, 신부는 북쪽에 준비된 대야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닦는다. 이때 신부가 먼저 두 번 절을 하게 되면 신랑이 한 번 답례를 하고 신부가 두 번 절을 하면 신랑이 다시 한 번 절을 하게 된다. 다음으로 신랑 신부가 한 표주박을 둘로 나눈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근배례’가 거행된다.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는 것을 의미하는 술을 반으로 자른 표주박 잔에 따라 마심으로써 두 잔이 합쳐져야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뜻으로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 근배례 때에 신랑 신부는 3회에 걸쳐 술을 나눠 마시는데, 첫째 잔은 지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고수레하는 잔이며, 둘째 잔과 셋째 잔은 표주박에 담아 마심으로 둘의 화합을 기원하는 잔이다. 1 초례상 위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꽂아둔다. 2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 하여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의미하는 기러기. 3, 4 기쁜 일에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인 음악은 전통혼례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
성혼행진 신랑 신부의 친구나 선배 혹은 은사가 혼례 성사를 하늘에 고하고 그 뜻을 만천하에 전하는 ‘고천문 낭독 의식’이 끝나고 나면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다. 이어서 둘의 혼례를 축하해주기 위해 먼 길을 온 하객들에게 양가 아버님이 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올리고 나면 이어서 두 사람의 친구나 후배들이 축하 춤을 추거나 축시 등을 낭독하고 하객들과 신랑 신부가 한데 어우러지는 축하 잔치가 벌어진다. 잔치가 끝나면 혼례상 위에 있는 산 닭을 날린 후 성혼행진을 함으로써 혼례를 마치는데, 혼례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 후 행진을 할 때에 하객들은 혼례상 위에 있는 팥과 쌀을 한 줌씩 나누어 쥐고 있다가 신랑 신부를 향해 던져준다. 이는 둘을 시샘하는 부정과 액을 떼어내고자 하는 하객들의 염원이 담긴 축복의 의식이다. 혼례상 초례상, 대례상이라고도 하며 혼례를 지낼 때 베풀어 놓는 큰상을 말한다. 상 위에는 청색?홍색 양초를 꽂은 촛대 한쌍과 소나무 가지?대나무 가지를 꽂은 꽃병 한 쌍, 백미 두 그릇, 청색?홍색 보자기에 싼 닭 한 자웅을 남북으로 갈라 놓는다. 청색은 신부 쪽을 뜻하며 홍색은 신랑쪽의 색이다. 소나무와 대나무는 송죽같은 굳은 절개를 지킨다는 뜻에서, 밤과 대추는 장수와 다남을 의미하여 반드시 상에 올리게 되어있다. 경우에 따라 콩과 팥, 술병 등을 올리기도 하고 지방의 특산인 계절 과일을 놓기도 한다. 1 근배례에 쓰이는 표주박잔은 하나였던 박이 둘로 나뉘어 다시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이다. 2 궁중이나 사대부가 의식이나 연회 등에만 사용하는 화초는 민간에서는 혼례식에 썼다. 3 신랑이 기럭아범과 함께 신부 집에 도착하여 신부 어머님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전안례. 4 대례상이라고도 불리며 청홍색 양초를 꽂은 촛대 한 쌍, 소나무·대나무 가지, 백미 두 그릇, 청홍색 보자기에 싼 닭 한 자웅과 밤, 대추, 콩, 팥 등과 지방 특산 과일을 놓기도 하는 초례상. |
혼례복 신랑은 친영을 위하여 사모를 쓰고, 단령포를 입은 다음, 각대를 띠고, 목화를 신은 옷차림의 사모관대로 장속한다. 사모관대는 조선조 벼슬아치의 관복 중 평상복에 속하는 것으로서 초기에는 당상관에 한했으나 이후 당하관에게도 착용이 허용되었다. 이에 따라 단령포의 색과 혁대의 장식 재료에 의하여 품계를 가렸고, 또한 흉배의 도안에도 구별이 있었다. 이러한 옷차림은 혼인을 치른 남자의 나이에 벼슬길에 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므로, 당시 혼인을 인륜의 대사라 하여 비록 가장 낮은 품계의 것이긴 하지만 특별히 배려하여 예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령은 녹포였고, 여기에 단학흉배를 가식하였으며, 흑각대를 띠었다. 이 차림은 서민층의 혼례 때에도 허용되었다. 신부의 혼례복은 혼인날 신랑과 신부가 마주 서서 교배례를 거행할 때의 복장을 말하며 활옷을 착용한다. 활옷은 원래 궁중에서 의식이 있을 때에 왕비가 입던 대례복이었으나 후에는 서민의 혼례복으로도 사용되었다. 홍색 비단에 청색으로 안을 받쳐서 만들었는데, 이는 청색과 홍색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색 바탕천에 숭고함과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연꽃, 모란꽃, 십장생 등을 가득히 수놓아 만든 활옷은 앞길이 짧고 뒷길이 긴 모양이며, 소매 끝에는 색동을 대고 흰색 한삼을 덧붙였다. 활옷에는 다홍색 바탕에 모란꽃, 연꽃 등과 더불어 장수와 길복을 의미하는 물결, 바위, 불로초, 어미봉, 새끼봉, 호랑나비 등의 수 외에 二姓之合, 萬福之源, 壽如山, 富如海와 같은 글씨를 수놓았으며, 소맷부리에 하남이 달려 있다. 이 활옷은 황색 삼회장저고리와 다홍 대란치마 위에 입었으며 대대를 띠었다. 수식에는 용잠을 꽂고 도투락댕기와 앞댕기를 드리웠는데, 큰댕기는 뒷댕기로서 주렴이라고도 한다. 이 뒷댕기는 검은 자주색 비단으로 만들어 너비 10cm 정도에 길이는 치마 길이보다 약간 짧고 두 갈래로 되어 있는데, 찬란한 금박을 하고 위에는 석웅황이나 옥판을 달고 밑에도 밀화나 금패를 달아 두 갈래진 댕기를 연결해주고 있었다. 도투락댕기 머리를 장식하기 위하여 머리끝에 드리우는 헝겊으로 ‘도다익당지’라고도 한다. 궁중이나 양반 가문에서 신부가 원삼이나 활옷의 혼례복을 입고 족두리나 화관을 쓸 때 쪽진 머리의 뒤쪽에 붙여 길게 늘어뜨린 뒷댕기를 말한다. 족두리를 쓸 때에는 댕기의 뾰족한 부분에 끈을 달아 매단다. 너비가 10cm 정도로 보통 댕기보다 넓으며, 길이는 치마보다 약간 짧고, 두 갈래로 되어 있으며 금박을 했다. 윗부분에는 석웅황이나 옥판을 달고 아랫부분에도 석웅황, 밀화, 금패로 만든 매미 5마리를 달아 두 갈래진 댕기를 연결해주었다. 1 전통혼례복 사모관대를 입은 신랑과 활옷을 입은 신부. 2 혼례복인 원삼이나 활옷을 입을 때 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머리끝에 드리우는 헝겊 도투락댕기. 3 다홍색 바탕에 모란꽃, 연꽃 등과 장수·길복을 의미하는 물결, 바위, 불로초 등을 수놓은 활옷. |
원삼 활옷은 상류 계급에서 착용한 것이고, 일반인은 활옷 대신에 원삼을 입었다. 원삼도 활옷과 같이 활수의 포의에 대대를 갖춘 조선조 여인의 일반 예복이었는데, 궁중에서 황후는 황원삼, 왕비는 홍원삼, 비빈는 자적원삼, 공주와 옹주는 초록원삼을 입었고, 반가에서는 초록원삼이었다. 당의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여자들이 입던 소례복으로 저고리 위에 덧입던 것으로 보통 겉은 초록이나 연두색으로 하고 안은 다홍색을 넣으며 자주색 고름을 달고 소매 끝에는 끝동과 같이 흰색 거들지를 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여기에 황후는 금실로 용을 수놓은 흉배를 가슴과 등 그리고 양 어깨에 달아 입었다. 당의 왕비나 세자비, 공주 및 외명부 등이 소례복으로 착용하고, 양반집 여인들은 대례복으로 착용하였다. 녹색 비단에 홍색 안감을 대거나, 자색 비단에 분홍색 안을 대어 만든 겹옷으로 소매가 좁고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유연한 곡선으로 트이고 밑 도련은 반달 모양을 이룬다. 왕실에서는 당의에 금박을 찍어 입었으나 반가에서는 무늬 없이 만들었다. 당의를 입을 경우 머리에는 화관을 썼다. 큰댕기가 머리 위를 덮어 뒤에 매단 데 비하여 앞댕기는 앞에 드리우는 댕기로서 큰 비녀 양쪽 여유분에 감아 적당한 길이로 맞추어 양 어깨 위로 드리웠다. 앞댕기와 뒷댕기는 혼례복에서는 짝을 이루는 것이다. 이 앞댕기도 검은 자주색에 금박을 하였고 양끝에는 진주 또는 산호주 등으로 장식을 하였다. 머리 위에는 칠보화관을 썼다. 도포 도포는 우리 옷의 풍성한 기풍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외출복이다. 두루마기와 같은 넓은 배래와 곡선, 뒤로 갈라진 전삼 등은 풍류를 느끼게 하는 홑옷이다. 소매는 넓은 두리소매이고 섶과 무가 있으며 뒷길의 중심선이 진동선부터 틔어 있다. 그리고 뒷길에 한 폭의 전삼을 덧붙여 뒤트임을 덮는데, 전삼이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은 도포의 멋과 특징이 되어 다른 많은 웃옷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옛날에는 이것이 사대부와 유생의 상복인 한편 통상적인 예복도 되었다고 하나, 후에 다른 예복들이 모두 폐지되자 도포는 남자의 유일한 예장이 되었다. 이 옷은 원래 특권적인 복장이어서 서민들은 입지 못하였으나 근세에 이 금기가 깨졌다. 1 활옷과 같이 활수의 포의에 대대를 갖춘 조선조 여인의 일반 예복. 2 왕비나 세자비 등이 소례복으로 착용하고, 양반집 여인들이 대례복으로 착용한 당의와 우리 옷의 풍성한 기품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남성 외출복인 도포. |
족두리 전통혼례에서 신부의 의관 중 빠질 수 없는 족두리는 의식 때 부인들이 머리에 쓰는 관으로 ‘족아’ 또는 ‘족관’이라고도 불렀다.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 아래는 둥근 원통형이고 위는 분명하지 않게 6모가 졌으며, 솜이 들어 있고 가운데를 비워서 머리 위에 얹는다. 쓴다기보다는 얹어놓고 비녀를 질러 고정하는 셈이다. 아무 장식 없이 검은 비단으로 만든 족두리를 ‘민족두리’라 하였고, 옥판을 밑에 받치고 산호수와 밀화구슬, 진주를 꿰어 만든 것을 ‘꾸민 족두리’라 하였다. 어여머리의 밑받침으로 쓰는 것으로 솜을 채워 부피를 크게 만든 ‘어염족두리’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관모로서의 족두리는 아니다. 칠보비녀 비녀에는 잠과 채 두 종류가 있다. 잠은 길쭉한 몸체에 원봉형의 비녀 머리가 있는 것이고, 채는 말발굽 모양의 윗부분에 장식이 달린 것이다. 비녀는 특히 조선시대 순조 중엽 이후 쪽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다양하게 발달하였으며, 신분에 따라 비녀의 재료와 형태를 달리하였다. 비녀는 기혼녀만이 꽂을 수 있었으며, 단옷날에는 처녀도 비녀를 꽂을 수 있었고, 부인은 새 비녀를 꽂았다. 단오에는 아침에 창포 뿌리를 깎아 새 비녀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락지 안은 판판하고 겉은 통통하게 만든 고리로서, 고리가 하나로 된 것은 ‘반지’라 한다. 반지는 미혼·기혼을 가리지 않고 아무나 끼지만, 가락지는 기혼녀가 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재료는 금, 은, 옥, 비취, 호박, 산호 등을 사용하며 조선시대에는 종류에 따라 계절에 맞추어 끼기도 하였는데, 재료에 따라 겉을 민패로 하기도 하고, 문양을 세공하기도 하였다. 노리개 노리개는 여성의 몸치장으로 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허리 등에 다는 패물로 궁중에서는 물론 상류사회와 평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된 장식물이다. 국가의 궁중의식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달았고, 간단한 것은 평상시에도 달았는데, 양반 계급에서는 집안에 전래하는 노리개를 자손대대로 물려주어 가풍을 전하기도 하였다. 외형상 호화로운 장식인 노리개의 정신적인 배경에는 부귀다남 ·불로장생 ·백사여의 등의 시대적인 행복관을 바탕으로 한 여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1 의식 때 부인들이 머리에 쓰는 관으로 족아, 족관이라고도 불리는 족두리. 2 혼례에만 사용되는 개성칠보비녀. 3 기혼녀만이 낄 수 있었던 가락지. 4 사대부집이나 부유층의 귀부인이 사용하였으며, 서민층은 혼례 때 신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삼작노리개 |
혼서 혼서는 혼인 때 신랑 집에서 예단과 함께 신부 집으로 보내는 서간을 말하는데 혼서지, 예장지라고도 한다. 과거에 혼서는 두꺼운 종이를 말아 간지 모양으로 접어서 사용했는데, 오늘날에는 대부분 인쇄한 혼서지를 주로 사용한다. 안에들어가는 서식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채단의 포장 함 속에 넣는 것 중에서 제일 먼저 함 바닥에 한지를 깔고 오곡주머니를 넣는다. 오곡주머니 안에는 각기 자손과 가문의 번창을 뜻하는 목화씨, 잡귀나 부정을 쫓는 팥, 며느리의 심성이 부드럽기를 바라는 노란 콩, 부부의 해로를 기원하고 질긴 인연을 바라는 찹쌀, 서로의 장래가 길함을 기원하는 향 등을 넣기도 하고, 잡귀를 물리친다는 고추씨나 일부종사를 의미하는 차 등을 넣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마다 관습이 다르므로 관습에 따라 뜻하는 것을 넣기도 한다. 그 위에 청홍 양단을 넣는데 음을 상징하는 청단을 먼저 넣고, 그 위에 양을 상징하는 홍단을 넣는다. 이때 홍단은 청지로 싸서 홍실로 동심결을 매고, 청단은 홍지로 싸서 청실로 동심결을 맨다. 함을 보낼 때는 청홍 겹보자기를 사용하여 홍색이 바깥으로 나오게 싼 다음 그 매듭에 근봉이라고 쓴 봉합지를 끼운 후 스무 마 정도의 무명천으로 함끈을 메게 된다. 함끈 역시 한 번만 잡아당기면 매듭이 풀리게 하는데, 이는 두 사람의 앞날이 술술 풀리라는 의미에서 묶지 않는 것이다. 1 혼례 전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채단과 혼서지를 담아 보내는 상자. 2 혼서지를 넣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혼서지보. 3 함 속 두루마기와 치마저고리를 싸는 한지와 청·홍실. |
폐백 시 신부가 앉아 절을 하는 화려한 자수와 컬러가 고급스러운 방석. 화촉 화촉은 밀초에 빛깔을 들인 초로 제조 기술이나 생산량을 극히 제한하여 궁중이나 사대부가 의식이나 연회 등에만 사용하였고 일반 민간에서는 혼례식에 썼다. 혼례식을 치른 후 신랑이 신부의 집에서 지내는 첫날밤은 화촉을 밝힌다 하여, 신랑 신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혼례식을 ‘화촉을 밝힌다’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결혼식에서는 양가의 어머니가 화촉을 밝힘과 동시에 결혼식이 시작되는데, 이때 붉은 초는 신랑 측을, 푸른 초는 신부 측을 뜻한다. 우리 고유의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어려운 의식이라 생각되던 우리의 전통혼례는 알고 보면 다른 예식에 비해 복잡하지 않고 일반 서양식 예식에 비교할 때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평생에 한 번 있는 큰 축제인 결혼을 멋과 예를 갖춘 전통혼례로 부부의 맺음이 시작될 것이다.
more intormation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는 곳 신라호텔 품위와 전통이 한국의 미와 어우러진 분위기에서 전통혼례를 치를 수 있는 곳. 왕실 전통의 기와와 건축물의 중후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을 제공해준다. 위치 서울시 중구 장충동2가 202번지 문의 2230-3431 롯데월드 하객들의 접근성이 좋으며 기상조건에 관계없이 혼례가 가능하여 선호도가 높다. 전통적 분위기의 실내 혼례장으로 짜임새 있는 혼례식을 자랑한다. 위치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40-1 문의 411-2000 한국민속촌 조상의 얼이 담긴 민속 문화 자료를 수집하여 보전하는 곳으로 주변 경치와 볼거리가 뛰어난 것이 장점.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치르는 대례를 중심으로 전통혼례가 진행된다. 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107번지 문의 031-288-2933 삼청각 북한산 소나무숲 속에 자리 잡은 전통 한옥으로 도심 한가운데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가족 같은 분위기의 소규모 혼례가 가능하다. 위치 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 330-115 문의 765-3700 민족혼뿌리내리기시민연합 국내에서 유일하게 황실 궁중혼례가 가능한 곳. 전통문화 발굴 빛 연구,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전통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위치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1가 8번지 전쟁기념관 내 궁중대례청 문의 813-6700 |
한복&소품|김영석한복(2230-1147) 장소|신라호텔 헤어&메이크업|정현정 파라팜(용일, 노혜경 540-6355) 분장|김선정 모델|김병찬, 김보희 파티 플래너|마혜미. 사진제공|신라호텔 참고도서|<전통혼례음식>(김덕희 저, 광문각 펴냄)
사진|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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