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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프,웨딩드레스] Yumi Katsura

웨딩21뉴스_ 2007. 9. 6. 11:51
Yumi Katsura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웨딩 디자이너 유미 카츠라. 낭만과 지성을 추구하며 끊임없는 열정과 크리에이티브한 감각으로 웨딩드레스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펼쳐 보이고 있는 그녀와의 특별한 만남.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웨딩 패션 디자이너

유미 카츠라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웨딩 디자이너다. 1964년 일본 최초의 웨딩숍을 오픈한 이래 44년 동안 웨딩 산업에 몸담으며 일본뿐아니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웨딩 패션의 선두주자로서 전 세계의 웨딩 패션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해 온 인물이다.

웨딩과 관련해 그녀가 이루어놓은 기록들은 가히 전설적이다. 1968년 일본 최초로‘The Bridal Book’이라는 웨딩 전문 서적을 출판하였으며, 1988년에는 고베에‘유미 카츠라 브라이덜 뮤지엄’을 개관해 세계 각국의 민족 신부 의상을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또 도쿄문화디자인 전문학교에 일본 최초로 브라이덜 학과를 개설하였으며 1993년에는 로마 교황의 부활제복을 디자인하고 제작, 1999년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이탈리아 패션협회 정회원이 되어 샤넬(Gabrielle Chanel), 아르마니(Giorgio Armani), 미소니(Ottavio Missoni) 등과 함께 스페인 광장에서 열린 로마 오트 쿠틔르 컬렉션에 참가했다.
 
2000년에는2001미터나 되는 웨딩 베일을 제작해 세계 최장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2002년 파리 오트 쿠틔르 컬렉션에서는 1백20억이라는 세계 최고가의 웨딩드레스를 발표해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웨딩과 관련해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라이선스는 모두 30여 개로 연간 웨딩 패션 관련 사업으로 1천억대가 넘는 매출을 자랑하고 있는 일본 패션계의 실력자.
 
이제까지 40여 년간 전 세계 60만 명의 신부가 유미 카츠라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동안 세계 15개국 20여 개 도시에서 웨딩 패션쇼를 펼쳤던 유미 카츠라는 화려하고 독특한 디자인, 전통미와 전통 기술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환상적인 작품들과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온 기모노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감각으로 창조한 작품들로 매번 관객들을 매료시켜 왔다.
 
유미 카츠라는 서울에서만도 세 번의 컬렉션을 열었다. 1987년 첫 번째 쇼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몇몇의 이국적인 느낌을 포함한 한국의 이미지를 선보이는 웨딩드레스와 기모노를 선보였다. 한국에서 일본의 디자이너가 단독 쇼를 개최하는 첫 시도였으며 3천 명이 넘는 관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1997년 두 번째 컬렉션은 1백여 벌이 넘는 웨딩 의상이 선보여졌던 대규모의 패션쇼로 한국의 몇몇 유명 인사가 게스트로 참가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 번째 컬렉션이 2005년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유미 카츠라 파리 오트 쿠틔르 컬렉션 인 서울(Yumi Katsura Paris Haute Couture Collection in Seoul). 이 쇼에서 유미 카츠라는 새로운 웨딩드레스 55벌을 무대에 선보였고 메인 모델로 선 탤런트 김소연이 1천 개의 진주가 화려하게 수놓이고 겹겹의 실크로 만들어진 시가 6억원 상당의 웨딩드
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주목받기도 했다.
 
어머니가 패션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패션에 흥미를 갖게 되어 전공하게 된다. 1960년 당시로서는 꿈과 같은 일이었던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유난히‘흰색’을 좋아했던 그녀는 귀국 후 학교의 졸업 작품 테마를‘웨딩(wedding)’으로 결정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그녀를 웨딩 디자이너로 자리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1 젊은 시절의 유미 카츠라. 원래 연극배우였던 그녀는 올해로 웨딩 디자이너가 된 지 44년을 맞이한다.
2 유미 카츠라 브라이덜 하우스 전경. 로코코 양식의 외관으로 도쿄 시내의 랜드마크로 자리하고 있다. 웨딩드레스에, 남성용 포멀 웨어에 이르기까지 웨딩과 관련된 모든 것이 자리하고 있다.
3, 7 2005년 7월 오픈한 프랑스 파리의 유미 카츠라 숍. 화이트의 전통적인 외관은 파리 분위기에 맞게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4 1993년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공들여 완성한 제의를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헌납해 주목받았다.
5 1996년 유미 카츠라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린 루마니아의 체조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 유미 카츠라는 그녀를 위해 롱 트레인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하였다.
6 1985년 뉴욕 컬렉션에서 유미 카츠라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영화배우 브룩쉴즈.
 
그녀가 웨딩 디자이너로서 일평생을 몸담게 된 이유를 굳이 꼽는다면 책임감이었다. 당시 일본의 웨딩 문화를 보면 97%가 전통 의상인 기모노(Kimono)를 입고 결혼식을 치렀고 웨딩드레스를 입는 경우는 3%에 불과했다.
 
무겁고 격식을 차려입어야 하는 기모노는 경제적인 부담뿐 아니라 헤어 장식 등 부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부분도 부담이 되었던 터. 유미 카츠라는 결혼을 앞둔 대다수의 여성들이 조금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웨딩드레스를 선호한다는 구체적인 현실을 간파했고 본인 자신이 일본의 웨딩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먹게 된다.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심이 디자인의 근원

이후 그녀는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와 미국 등 약 20개국을 방문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가 매진한 것은 단 한 가지.‘ 세계 각국 신부들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리서치만을 위한 여정이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녀는 1965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웨딩 패션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
 
해외 각국을 견학하고 돌아온 그녀의 디자인 감각은 당시 많은 일본 여성들에게 꿈을 전파하였다. 연 1회 꾸준하게 컬렉션을 개최해 가며 웨딩 전문 디자이너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1980년 세계 무대로의 도약으로 연결
되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뉴욕에서 브라이드 컬렉션을 개최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였다.
 
첫 번째 해외 진출 무대에서 그녀가 내렸던 결단은‘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즉 미국이나 유럽의 소재가 아닌 일본 고유의 소재와 디자인만으로 승부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녀의 참신한 디자인은 미국 여성을 크게 열광시켰으며 기자와 바이어들은‘유미 라인(Yumi line)’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1981년 뉴욕 컬렉션의 성공을 계기로 세계의 유명 패션 관계자들은 그녀의 웨딩드레스에 주목하게 된다. 그녀 또한 이 시기에 일본의 신부들뿐 아니라 세계의 신부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공헌하고 싶다는 꿈을 심기 시작한다. 1985년 뉴욕 컬렉션에서는 당시 유명 영화배우 브룩 쉴즈(Brooke Christa Shields)가 그녀의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 뉴스위크(Newsweek)’,‘ 우먼스 데일리(Woman’s Daily)’그리고‘보그(Vogue)’등 다음 날 신문과 잡지는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브룩 쉴즈의 웨딩 화보로 장식되었고 이어 영화‘나일의 대모험(The Jewel of the Nile)’의 캐서린 터너
(Kathleen Turner)가 입을 웨딩드레스를 제작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많은 스타와 저명한 인사들이 그녀의 웨딩드레스에 더더욱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몬트리올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체조 요정으로 전 세계인을 매료시켰던 루마니아 출신 나디아 코마네치(Nadia Comaneci)의 결혼식. 당시 언론은 그녀의 결혼식과 그녀가 입은 웨딩드레스에 큰 관심을 모았다.
 
이렇게 미국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유미 카츠라의 이름은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개최하게 된다. 품격과 자유, 그리고 대범한 그녀의 디자인에 관중은 갈채를 보냈고 그녀에게는 박수가 쏟아졌다.“ 엘리건트한 컬렉션으로 대범하면서도 자유분방한 터치감과 로맨틱한 꿈을 표현해 주는 사람은 유미 카츠라를 제외하고 다른 이는 없다”라는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의 찬사, 그녀에게 꿈같은 순간이었다.
 
1986년에는 중국의 베이징에서 중국 최초로 브라이드 쇼를 개최하였다. 이후 상하이, 다롄 등에서도 컬렉션을 개최.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중국 여성들을 열광케 만들었고‘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모든 신부들에게 행복을 선물하고 싶다’는 그녀의 인터내셔널한 꿈의 거대한 다리는 이렇게 또 하나 연결되었다.
 
1993년에는 1년 6개월여의 오랜 시간을 공들여 완성시킨 제의를 로마 교황 바오로 2세에게 헌납하기도 했으며 이를 입은 교황의 모습은 부활절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내가 오트 쿠틔르 디자인에서 펼친 아이덴티티는 바로 일본의 아름다움이다”라며 이러한 컨셉트를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겨루는 파리 오트 쿠틔르에서 펼쳐 보인 테마는 바로‘Japan View’였다.
 
일본 특유의 문화를 강렬하게 표현하여 염색 기법 등을 새로이 적용한 작품을 만들었고 화지(일본 종이)를 오리고 주름을 잡아 볼륨감을 전하는 등의 기법으로 종이에 새로운 생명력을 담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러한 그녀의 마법에 대해 사람들은 놀라움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일본의 전통미를 새로운 멋으로 개선해 발전시킨 그녀는‘Washi Mode’라는 새로운 패션 용어도 만들기에 이른다.‘ 감추면 꽃이 된다. 감추지 않으면 꽃이 될 수 없다’.‘ 의외성을 갖고 있는 것이 놀라움의 근원이다’라는 그녀의 신념을 담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신비스러움과 재미와 감동을 주는 꽃을 피우기 위한‘의외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그녀의 신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미 카츠라 디자인의 근원은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심과 신기술에 대한 집념을 들 수 있다. 직물에 대한 그녀의 시각은 모두 부정이 아닌 긍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드레스의 소재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라는, 즉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에서 유미 카츠라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늘 탄생되고 있다.

 

1 일본의 유명 모델 이시카와 아사미가 입은 유미 카츠라의 웨딩드레스. 종이를 오려붙여 만드는 형태인 오리가미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2 유미 카츠라의 2005년 파리 오트 쿠틔르 발표 작품. 환상적인 블루 로즈를 테마로 해 매스컴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3 블루 로즈의 플라워 모티프가 다이내믹함을 전하는 웨딩 팬츠. 대범하면서도 로맨틱한 꿈을 표현해 주는 작품이다.
4 1999년 이탈리아 패션협회의 회원이 되어 펼친 첫 컬렉션 피날레 장면. 이 컬렉션에서 그녀는 뜨거운 관심과 갈채를 받았다.
5 터번 스타일의 헤어 장식은 유미 카츠라의 상징이기도 하다.

낭만과 지성 추구하며 감동 선사하는 디자이너
유미 카츠라의 웨딩드레스에는 유독 장미가 눈에 많이 띈다. 웨딩에 있어서, 그리고 로맨틱한 분위기 연출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될 소재인 장미.‘ 아름다움과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장미는 유미 카츠라의 상징이기도 하다. 1964년 그녀의 데뷔 무대에서 찬사를 받았던 작품은 양 소매에 장미를 장식하여 입체를 강조한 웨딩드레스였다.
 
데뷔 이후 지난 40여 년 동안 자수, 레이스, 프린트, 커팅 등 의상 제작의 모든 과정에 장미 모티프가 담겨져 있다. 1998년에는 그녀의 이름을 붙인‘로즈 유미(Rose Yumi)’라는 새로운 종의 백색 장미가 탄생했다.
 
그녀는 말한다.“ 장미에는 화려함이 있어요. 기품과 격조도 느껴지지요. 게다가 백색이 주는 청초함이 더해진다면 웨딩 모티프에 있어 이 이상의 상징은 없습니다.”로즈 유미가 탄생한 해 컬렉션의 타이틀은 ‘Dozen Roses Wedding’. 그리고 2004년 그녀가 최고로 원하던 환상의 장미라고 불리는 블루 로즈(Blue Rose)를 일본에 탄생시켰다.

이 블루 로즈는 유령의 장미라고도 불릴 정도로 신비스러움을 담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유미 카츠라가 추구하는 패션은 낭만과 지성을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블루 로즈는 이러한 디자인의 컨셉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2005년 봄∙여름 파리 오트 쿠틔르 컬렉션의 테마는‘Blue Rose Sensation’.
 
새로운 장미의 탄생을축하하는 의미와 함께 패션쇼의 테마로 선정되어 신부들에게 새로운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40여 년 동안 때로는 좌절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유미 카츠라의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해주었던 수많은 신부들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녀.
 
세계 무대에서 지금도 맹활약 중인 그녀의 에너지의 근원, 웨딩 디자이너로서 이면에 있는 힘은 명예나 영광이 아니다. 단지‘신부들의 행복해하는, 웃는 얼굴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자료 협조|YUMI KATSURA INTERNATIONAL 사진|박현진 에디터|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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